지속가능한아시아를위한뜨거운질문(2)_ "무례한 지원.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

지속가능한아시아를위한뜨거운 질문#1. "더 나은 세상, The better World?"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속가능한아시아를위한뜨거운 질문#2. 무례한 지원.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
 
 
요즘 이 마을에서 가장 골칫거리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있었나요?”
외국에서 NGO나 대학 같은 곳에서 마을에 자주 오는데, 옆집은 쌀을 주고 우리는 안주거나 공평하게 주질 않아 속상했어!”
 
지난 해 캄보디아 도시빈민 지역 현지조사 주민 인터뷰에서 오간 이야기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도 단체복을 입은 이방인들이 무엇인가를 주~욱 나눠주곤 금세 마을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 주민들은 수혜자의 기쁨이나 희망보다는 갑작스레 찾아 온 부당함과 싸우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답변에 순간 머릿속이 흐려졌다.
 
몇 가구 되지도 않는 그 마을에는 서로 다른 로고가 적힌 우물이 족히 열 개는 넘었다. 한국의 **대학, 일본의 **기관, 프랑스의 **단체 등등... 그러나 대부분의 우물에는 쓰레기로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인근 판잣집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큰 교육장이 있었고, 그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문이 열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맙소사! 입구에는 한국 **에서 지원한 태권도장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
 
[그림설명] 라오스 방비엥 인근의 작은 소수민족마을. 마을 구석구석 소소한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언젠가 스쳐왔을 것 같은 정겨운 풍경에 잠시 생각을 멈춘다.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이들만의 평화를 깨는 일은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해볼 일이다. (그림: 장미정)
 
문득 2007년 겨울이 떠올랐다.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석유를 펑펑 쓰다가 그 속에 빠졌을 때. 인간 욕망의 뒤안길에서 검은 눈물을 흘리는 바다로 많은 사람들이 달려갔다. 내가 참가한 날은 마침 2,000명이나 되는 대규모 자원봉사단이 바닷가에 쪼그려 앉아 기름을 닦아냈다. 그러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의아한 것이 오가는 길 적어도 6~7개 서로 다른 종류의 음료수가 봉사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기업들이 좋은 뜻에서 내어놓은 지원물품이었지만 이건 아니지 싶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기 시작했고, 인근 피해지역 학교의 선생님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몇몇 교사들은 어처구니없는 일방적 지원에 분통을 터뜨렸다. 유통기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수십 개가 넘는 과자박스가 전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교는 전교생 18. 그대로 쌓아둘 수도 없고, 나눠줄 수도 없어 교사들은 생각다 못해 봉지를 뜯어 분리수거하느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
 
우리는 현지 주민들과 교육 관계자분들과 간담회를 갖고, 그 결과로 피해지역 어린이들을 초청해 위로와 다시 희망을 찾게 해주고자 교육지원활동을 시작했다. 시작은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진행하였지만, 이후 어떤 지원을 해야할 지 몰라 무작정 물품을 보내던 기업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오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국제적 요구에 부응해 최근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자금원조의 규모가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다. 그런데 간혹 '무례한 지원' 현장을 방문할 때면 기대감 이상의 우려감도 커져만 간다.
 
진정한 지원은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많은 전문가들은 아시아 지원 혹은 협력을 위해서 그들의 요구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수직적 협력이 아니라 수평적 협력, 배우려는 자세를 강조한다. 선의로 계획한 일이라도 그들의 전통이나 관습, 문화나 정서에 맞지 않으면 무례한 지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보다 당장 물고기를 건네는 것이, 공동체나 마을보다는 특정한 개인을 지원하는 것은 주는 입장에선 편리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 되물어야 할 질문...... “누구를 위한 지원인가?”

 

(다음 호에 계속)
 
 
글/그림 : 장미정 ()환경교육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