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여행기] 낯선 길 위에서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2)


[교보 2008 대학환경상 수상집 부문 게재]







 





 라오스 여행기(2). 자연에 대한 경외심, 잘 지켜진 소박함


- "낯선 길 위에서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


  루앙파방에서 싸이나부리라는 영란이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가던 날은 때마침 근 10년만이라고 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폭우가 며칠째 쏟아지고 있었다. 산 중턱에서 마주오던 차가 웅덩이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렸고, 길을 멈춘 우리 차 뒤로 서서히 차들이 길게 늘어서고 있었다. 1시간만 더 가면 마을로 들어가는 강을 건널 수 있는 위치였다. 차가 멈춰선 후에는 낡은 버스 지붕을 타고 고여 있던 물방울이 급기야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비닐봉지를 이용해 물방울이 지나올 길을 정성껏 내어준다. 길을 따라 떨어진 물방울은 비닐봉지 사이에 고인다. 한참을 집중해서 꼬물딱 거린 결과이다. 옆에 있던 동료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준다. 차가 곧 움직이겠거니 하던 우리는 2시간이 지나도 창문으로 보이는 바나나 잎이 바뀌지 않은 것을 눈치 채고 장기 여행 준비에 들어갔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과 볼일을 보는 것이다. 오전 8시 출발 12시 도착예정이었던지라 우리 팀의 먹을거리는 부실했다. 다행히도 오래두고 먹을 요량으로 구입한 곡물 빵이 있어 다행이었다. 눈인사를 주고받았던 뒤쪽의 라오스 가족일행은 대나무 도시락 통에 파파야로 만든 피클과 찹쌀이 든 밥 등을 펼쳐놓는다. 서로의 음식을 나누고 야외의 천연 화장실(?)도 공유하며 미소를 주고 받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따뜻한 이웃이 되었다.


  드디어 강마을에 도착한 우리들은 폭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강 주변의 집 몇 채가 지붕만을 남겨놓고 물속으로 잠수해 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수해의 현장에 나와 있었지만 혼란도 소란함도 없었다. 그저 서로를 혹은 지금의 상황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버스의 일행들이 산 중턱에 걸쳐진 차안에서 어느 누구의 투덜거림도 없이 6시간을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며칠째 계속된 호우였기 때문에 적당히 대안을 찾아 사람피해는 없다고 한다. 라오스인들은 조용히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전에 없이 잦아진 기후변화 현상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득 ‘한국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것 같아!’라는 필리핀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국에 와서 시민활동을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 해변에서 기상악화 예보에도 불구하고 웃돈을 얹어주며 섬에 들어가기 위한 배타기를 강행하다가 사고로 죽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격앙된 목소리와 냉정한 표정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가 없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만을 표했던 것이다.


  자연에의 순응이든 경외심이든 라오스인들의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지혜로움이 ‘최후의 에덴동산’이라고 불릴 수 있는 라오스를 지켜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잘 지켜진 소박함


  처음 라오스에서 인상 깊은 것은 도시답지 않은 도시의 모습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라오스는 초록빛 바탕에 몇 개의 선들(길)과 점들(집)로 채워져 있었고, 굵고 매혹적인 곡선의 메콩 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최빈국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국제원조가 정부예산의 20~30%를 차지할 정도로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는데도 이웃 동남아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잘 지켜진 소박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왜 일까?


 


  루앙파방은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도시이고 위엔짱은 라오스의 수도인데도, 두 도시 모두 걸어서 어디든 갈수 있을 정도로 작고 3층 이상의 건물도 드물게 눈에 띠는 정도였다. 국제원조를 받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 원조국의 취향에 맞게 화려하거나 돌출적인 외형을 지니는 경우가 많지만 라오스는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간직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최빈국인 라오스에서는 구걸하는 사람, 소위 거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들이 먹을 것 정도는 과일이며 야채며 가축이며 자급자족하는 품목이 꽤 많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의 거래행위를 하게 되고 개인소득수준에는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차안에 가방을 놓고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도난사고와 같은 종류의 사건사고도 거의 없다고 한다. 대신에 그들은 매우 부지런해 보인다. 새벽 5시면 북적대다가 저녁 5시가 되면 정리하는 모닝마켓도 그렇고 추워지기 전인 저녁식사 전에는 모두가 집 앞에 나와 샤워를 하는 모습도 그렇다. 현상은 문화가 된다. 소박하지만 바지런하고 그 이상의 욕심은 없어 보이는 사람들, 자연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어느 여행가의 말처럼 라오스는 정말 ‘욕망이 없는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라오스의 음식은 주변나라인 태국과 베트남은 물론 우리나라의 그것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우선 모닝마켓을 돌아다니면서 가지, 호박, 오이, 쪽파, 토마토, 마늘, 감자, 고구마, 숙주나물 등 우리가 즐겨먹는 각종 채소들을 찾을 수 있어 반갑다. 라오스에서 무엇보다 감명 깊은 최고의 음식은 산에 들에 나는 각종 향초를 넣어 먹는 쌀국수! 잡초는 없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다양한 풀잎들이 매번 식탁에 놓여 입맛을 돋운다. 베트남, 태국에서의 그것과는 또 다른 소박하지만 전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 라오스다운 멋진 음식이다.  (계속)


 


                         *글: 장미정((사)환경교육센터, 서울대 환경교육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