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출장여행기(1)] “자연에서 살기, 자연에서 살기 위해 살기”


[라오스출장여행기(1)] “자연에서 살기, 자연에서 살기 위해 살기”

 

 

- 글, 그림 : 장미정_(사)환경교육센터 소장

 

 

라오스. 호탕한 웃음보다는 작은 미소, 활기찬 도시보다는 평화로운 오솔길이 떠오르는 곳. 이번 여정은 교육자문 겸 현지조사 출장이다. 일차적으로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이하 에정연)라는 환경연구단체의 녹색ODA 사업의 교육자문, 이차적으로는 환경교육센터가 아시아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교육적으로 필요한,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떠났다.

 


[주: 에정연은 몇 해 전부터 라오스 산간 오지마을의 중학교에 재생가능에너지를 보급하는 사업을 해 오고 있으며, 환경교육센터는 아시아의 지속가능발전교육 콘텐츠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14년 4월 11일부터 21일까지 에정연 사업지원 차 라오스에 다녀왔다.]

 

 


대지의 선물. 출장가방을 챙기면서 고른 한 권의 책은 “대지의 선물(The Fat of the Land)”. 자급자족의 선구자로 알려진 존 세이무어가 가족과 함께 한 자급자족 생활을 담은 책이다. 소로우의 “월든”과 비슷하진 않을까 싶어 잠시 고민하는 사이, 책이 이미 가방 안에 자리를 잡았다. 적어도 시간이 멈추어가는 듯한 라오스에서는 조금 느리게 움직이며 마음을 살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오스로 향한지 얼마 안 되어 꽤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예상과 달리(?) 현실적이고 유쾌한 체험기에 금새 빠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라오스의 마을로 들어가면 갈수록, 존 세이무어를 비롯해 귀농귀촌을 꿈꾸는 현대인들이 모든 문명과 이기를 떨쳐내고 어렵게 선택하는 자급자족의 생활방식이 라오스인들의 생활과 겹쳐졌다. 하지만 뭔가 엇갈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자연에서 그렇게 살아왔던 라오스 사람들, 그리고 자연에서 살기위한 선택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또 다른 현대인들. “자연에서 살기”, “자연에서 살기 위해 살기.” 얼핏 같아 보이지만 서로 다른 곡선이 만나 전혀 다른 미래를 갖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양쪽이 꿈꾸는 지속가능한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림설명] “대지의 선물(The Fat of the Land)” 이 책의 저자 존 세이무어는 평생 전원생활을 하면서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생활양식을 알려온 환경운동가이다. 영국에는 그의 자급자족 학교가 있다.

 


야자나무 아래 해먹을 타는 두 사람. 존 세이무어의 삶과 라오스인들의 삶을 동시에 체감하는 동안 필리핀의 지역조직가가 들려주었던 구전되는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대략 이런 이야기이다.


 





‘야자나무 아래, 나이 지긋한 두 사람이 나란히 해먹에 누워있었어. 한 사람이 다른 한사람에게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스토리를 들려주었지. 자기가 인생의 황혼 무렵에는 지금처럼 해먹을 타면서 여유롭게 살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약간은 자랑이 하고 싶었을 거야. 젊은 날 고향을 떠나 부와 명예를 찾아 도시로 떠났고,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 보상으로 돈도 많이 벌었고, 명예도 얻었고, 그래서 지금은 여기서 해먹을 타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야. 그러자 함께 해먹을 타던 다른 한 사람은 그저 살며시 미소를 띠웠지. 그리고 한마디만 하더래. 난 예전에도 지금도 여기서 쭈욱 해먹을 타고 있었다고...’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인생여행을 떠난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결국 도달하게 되는 곳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거기에 그대로 있어왔던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반 여이하이.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강마을 ‘반 여이하이’ 이다.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유명한 루앙파방(루앙프라방의 현지 발음)에서 배로 한두서너 시간 걸리는 작은 마을이다[주: 스피드보트나 크루즈 이용하면 한두 시간이지만 일반보트로는 서너 시간. 라오스에서는 이동시간을 정확히 언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라오스의 웬만한 시골마을이 그렇듯이 이 마을도 자급자족이 기본이다. 벼나 옥수수 농사를 짓고 소나 닭을 키우는 것이 기본이지만, 젊은이들일수록 농사 이외의 직업을 찾기도 한다. 현재 78세대 52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소수민족인 카무 족들이 많다. 마을의 유일한 학교에는 초등학생 110명이 다닌다. 1개의 초등학교, 1개의 절이 그나마 큰 시설의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우리가 이 마을을 찾은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필요가 있는지, 교육적 지원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 나아가 지원할 경우 지속가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반 여이하이’의 모습은 아이들이다. 강 건너로 마을입구가 보일 무렵 멀리서 버팔로와 뛰어노는 아이들의 무리와 발가벗고 강변에서 수영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우리 배가 들어오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어느 틈에 벌써 옷을 다 챙겨 입고,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언덕길 위에 올라서 있다. 강어귀에서 우리를 본 척 못 본 척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가 가는 마을 길목 어딘가에서 불쑥 불쑥 나타났다.

 



 




[그림설명] 강마을 ‘반 여이하이’ 어귀. 며칠 뒤 한국에서 선박침몰 사고 소식이 전해졌을 때,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풍경이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이 이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평화를 깨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모두를 위한 평화, 모두를 위한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다.

 

 

(강마을 ‘반 여이하이’의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