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에세이-명절에서 살아남기

명절에서 살아남기

초록상상 장이정수

 


가계부채가 1000조에 육박하는 가운데 2012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국민이 벌어들이는 총소득과 부채가 비슷한 상황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명절하면 떠오르는 모든 스트레스가 여성들은 허리 펼 틈 없이 아무도 안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남성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고스톱을 하는, 여성에게 불리한 문화에서 기인했다면 최근에는 더 심각하게 가족을 위협하는 경제위기까지 가세한 것 같다. 더 많이 돈 쓰고 더 많이 스트레스 받고 더 많이 관계가 소원해지는 명절. 분명 명절은 그 지루함과 형식면에서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내 제사 거부 운동을 하는 고은광순씨는 이렇게 제안한다.

“죽은 자를 향해 일렬로 뒤통수 쳐다보면서 서 있지 말고, 코흘리개부터 노인들까지 1분 스피치 같은 걸 하면 어떨까요? 근황은 어떤지,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거죠. 가족 운동회나 야유회, 가족 연극 등을 하면서 상호 이해와 수평적인 소통을 이뤄가야 합니다. 살아있을 때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놓으면 죽음이 그렇게 서럽지 않겠지요.”

관성을 멈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도 필요한 법이지만, 일단 명절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었으면 좋겠다.

나는 올해 명절을 이렇게 보낼 계획이다.

첫째, 장보기는 생협에서 할 것이다. 2012년 UN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이다. 한국의 생협이 우리 삶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안전막이 되길 바라는 나로서는 IMF로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우리 농민과 동네상인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주머니가 얇아도 대형마트는 가지 않을 것이며 생협과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다. 공정무역 설탕이나 커피도 좋고 물사랑치약이나 친환경세제와 건강음료 등으로 작지만 따뜻한 마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고 믿을 작정이다.

둘째, 즐거움을 강요하는 온갖 마케팅의 노예였던 연말의 크리스마스를 정리하고 주변을 돌아보려고 한다. 12월엔 북한어린이를 돕는 목도리를 떴는데 1월엔 캄보디아의 어린 소녀들에게 보낼 면생리대를 바느질 할 생각이다. 아프리카의 신생아를 위한 모자를 떠도 좋고 동티모르의 평화를 위한 커피는 어떤가. 혹은 반핵 운동이나 북극곰의 생애, 녹색당의 활동을 검색해도 좋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단체나 정당에 후원가입서를 보낼 지도 모른다. 종편 드라마 보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 않을까.

셋째, 짧은 명절이지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꼭 가질 것이다. 올해 읽고 싶은 책 리스트도 만들고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나와의 약속을 천천히 생각해보고 조금씩 실천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세상을 옮기는 일도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세상이 더 힘들고 소란스러울수록 지금 여기 살아가는 자신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길 생각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메일이 아닌 종이로 쓴 편지를 써서 보내는 일은 불가능할까? 최소한 새 일기장을 만들어 올해의 약속과 꿈을 쓰는 일은 시작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2012년은 덜 먹고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움직여야겠다. 명절음식은 조금만 만들어 감사한 마음으로 알뜰하게 먹고 조금 출출한 상태로 식구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태적이지 않을까. 덜 소비하고 더 많이 존재하는 것, 돈을 쓰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방법 중의 한두가지라도 이번 명절에는 시도해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