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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안에서 본 환경운동 / 송상용 | |
주말 대전에서 열린 환경운동연합 전국대표자회의 결과가 발표된 월요일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철저히 외면했던 주류 언론이 연초부터 환경연합의 비리를 들추더니 정부의 초강수가 드디어 막바지에 온 느낌이다. 한국에 환경문제가 떠오른 것은 박정희 정부가 공업화를 서두른 1960년대 후반으로 선진국들과 거의 때를 같이한다. 그때 미국에서 요란한 환경운동을 보고 돌아온 나는 환경에 관한 글을 쓰고 책도 번역했지만 운동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면식이 없는 최열의 전화를 받고 새로 출발하는 환경운동연합에 참여했다. 15년 동안 시민환경대학장, 환경연수원장, (사)환경교육센터 이사장을 지냈고 아직도 지도위원, 센터 이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으니 주변에서 일했어도 환경연합을 꽤 잘 아는 편이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은 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서 비롯해 공해추방운동연합을 거쳐 25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공추련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급진적인 민중운동을 폈는데, 그 후신인 환경연합은 생명사상을 포함한 넓은 이념의 스펙트럼을 포괄했다. 민중은 시민으로 바뀌었다. 환경연합은 전국으로 조직을 확대했고 크게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단시일에 8만 회원을 가진 한국 최대의 환경단체로 컸다. 초대 사무총장 최열은 뛰어난 기획과 추진력으로 환경연합을 이끈 공로자다. 환경연합은 처음에는 회비, 활동가, 임원들의 성금, 후원금으로 꾸려 나갔다. 규모가 커지면서 외부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했으나 대부분이 부속기관·지부에 집중되어 있고 전체로 보아 비중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 부잣집 아들 최열은 돈에 애착이 없다. 그는 잦은 강연으로 수입이 많았는데 지방에서 강연하면 사례금을 봉투째 지역조직에 쓰라고 내놓곤 했다. 그는 나중에 국제환경상 상금 전액, 사외이사 수당의 반을 운동에 보탰다. 사업을 하는 윤준하(전 대표)는 회의 때마다 저녁 값을 냈다. 지도위원회는 늘 각자 부담으로 회식을 했다. 몇 사람의 비리를 가지고 마치 환경운동이 썩은 것처럼 왜곡하는 글들을 볼 때는 분노가 치솟는다. 물론 오래전부터 나온 환경운동에 대한 비판에 진작 귀 기울여야 했다. 문화운동도 좋지만 환경재단이 풀뿌리 시민운동에서 유명인사 중심으로 귀족화된 것은 문제였다. 기업의 녹색화 노력이 오히려 반환경 기업 견제를 약화시킨 면이 있었다. 낙선운동, 개혁후보 만들기가 많은 적을 만들어 화근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환경연합이 방만한 경영을 한 것은 사실이다. 초창기의 주먹구구식 운영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자리가 잡힌 뒤에까지 관리를 잘못해 비리를 막지 못한 것이다. 최열이란 카리스마가 떠난 뒤 젊은 후임 총장들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다. 환경연합은 특별대책회의를 만들어 개혁 과제를 내놓은 데 이어 거듭나기위원회가 조직 쇄신 작업을 시작했다. 투명성의 제도화, 조직 축소, 시민성의 회복에 기대를 걸어 본다. 활동가들이 백만원밖에 안 되는 생계비를 반으로 깎는다는 결의가 눈물겹다. 최열의 구속영장에 나열된 범죄 사실을 읽어 보면 누구라도 검찰이 표적수사를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녹색 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와 남북관계 악화라는 이 어려운 때 환경운동 죽이기에 다걸기를 하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폭주를 어떻게든지 막아야 한다. 최열·윤준하와 함께 환경연합의 중심에서 일해 온 이시재(서울 의장, 가톨릭대 교수)의 글을 옮긴다. “환경연합은 우리 사회의 정말 귀중한 공공재산이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사)환경교육센터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