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의에서는 막 출간된 을 쓴 기자 출신 사이먼 윈체스터의 특별강연이 관심을 끌었다. 지질학을 전공한 윈체스터는 (1988년)를 비롯해 20여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논픽션 작가다. 이 신간은 조지프 니덤(1900∼1995)의 전기다. 니덤은 30대에 발생학·생화학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후반생에는 중국 과학사 연구에 몰두해 거작 을 거의 완성한 ‘20세기의 르네상스인’이다. 니덤을 만난 일이 없다는 지은이는 그의 극적인 일생을 격조 높은 글로 그리고 있다. 특히 소문만 자자했던 니덤과 부인 도러시(생화학자, 1896∼1987), 둘째 부인 루궤이전(중국 과학사학자, 1904∼1991)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흥미진진하다.
나는 1974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 과학사 회의에서 니덤을 처음 만났다. 인사를 나누며 너무 감격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서울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니덤은 나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도 갈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평양에 간 전력이 있다.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고, 그는 가고 싶다고 했으나 거듭 초청을 받고도 끝내 오지 않았다. 1987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다시 졸랐을 때 그의 본심이 드러났다. ‘못된 정부’(전두환)가 있는데 어떻게 가느냐고.
니덤이 북한에 간 사연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치 독일이 잔인한 인간생체실험을 한 것은 유명하지만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같은 때 똑같은 만행을 저지른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얼빈 교외 핑판의 ‘죽음의 공장’ 등에서 자행된 생체실험의 희생자 3천여명에는 한국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중국 전역에 병균을 퍼뜨리는 세균전으로 민간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전후 미국은 일본이 생체실험과 세균전에서 얻은 귀한 자료를 챙기는 대가로 731부대의 범죄행위를 눈감아 주었다. 생체실험을 주도한 독일 의사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었으나 731부대 간부들은 도쿄 전범재판에서 제외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전후 일본 의학계의 지도자로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1952년 봄 북한과 중국 정부는 미군이 북한, 중국 동북지방에서 세균전을 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니덤은 궈모뤄(곽말약)의 초청을 받고 국제과학위원회의 일원으로 현지 조사에 참여했다. 그가 북한에 머문 시간은 열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귀국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비난을 지지했다. 니덤은 ‘빨갱이’의 선전에 넘어간 ‘얼간이’로 외톨이가 되었고 미국 비자가 거절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의 명예는 중국 과학사 연구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회복되었다. 학계에서는 미군의 세균전이 731부대의 연장이라는 시각과 공산국가가 조작한 프로파간다라는 주장이 싸우고 있다. 윈체스터의 책에서도 이 문제는 결론이 안 났다고 쓰고 있다.
니덤의 은 서양의 동아시아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몫을 했다. 니덤은 이 책에서 한국 과학을 각별히 높이 평가했고 (1986)라는 공저를 내기도 했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