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서평]『국어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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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그물코다
_ 국어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간혹 이런 생각이 든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살을 베어버릴 듯 날이 선 물체라도 농부의 손에 들어가면 들을 일구는 수단이 되지만, 순간의 흉악한 마음을 참지 못하는 이의 손에 들려지면 흉기가 된다.
과학이나 기술도 그러하다. 과학이라는 학문 또는 지식이 스스로 사유하고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니다 보니 혼자서는 결과를 내어 놓지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과학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과학 기술은 당연히 가치지향적이다. 쉽게 말해, 과학 기술은 선택의 순간에 어떤 가치를 더 우선에 놓거나 추종하거나 따른다. 이것은 학문이나 기술을 움직이게 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과학 기술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황폐화시키는 데 앞장섰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과학 기술이 지구를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갖은 방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도구 역시 과학과 기술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리하자면 과학 기술은 제 잘못을 제가 나서서 폭로하고 다니는 셈이다. 자신을 베기도 하고 자신을 치유하기도 하는 칼, 과학. 그러므로 과학 기술은 가치지향적이며 문제는 학문이나 도구가 아니라 그 학문이나 도구를 운용하는 인간, 그 중에서도 인간의 의지다.


과학 기술의 양면성을 보여주다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는 이러한 과학 기술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 김보일은 신문, 잡지, 온라인 등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맹렬 저술인이다. 김보일은 한 달에 30여 권의 책을 읽어치울 정도의 독서광인데, 덕분에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는 그가 이룬 방대한 지식과 사유가 깊은 결을 이루는 책으로 태어났다.  

최근에 면역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들 중에 ‘조절 T세포’라고 불리는 세포들이 알레르기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조절 T세포는 면역 반응을 억제시키고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장 속에서 우리가 먹은 음식물에 대해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도 조절 T세포의 기능이다. 기생충에 감염되면 조절 T세포가 늘어난다.
에딘버러 대학의 연구팀은 기생충이 조절 T세포를 통해서 알레르기를 억제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생쥐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장에서 기생하는 선충을 실험용 생쥐에게 감염시키고 그 생쥐의 몸에서 조절 T세포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천식을 앓고 있는 생쥐에 이 조절 T세포를 주입시켜 증상이 호전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로써 기생충이 조절 T세포를 증가시키고, 늘어난 조절 T세포가 알레르기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중에서


자연은 순수하지 않다

이 책은 상식을 배반하는 것에서 사유를 시작한다. 일례로 “자연은 순수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식이다. 저자는 “자연은 순수한 세계요, 문명은 오염된 세계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연적인 상태가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상태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를 대기보다는 자연은 순수하지 않다는 근거를 대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웅덩이 속의 물이 순수한가. 웅덩이 속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생명체들은 웅덩이 속에서 호흡을 하고 먹이를 취하고 배설을 한다. 웅덩이는 결코 순수할 수 없는 공간이다.
소가 풀을 뜯는 한가로운 전원의 풍경을 상상해보라. 그곳은 생각처럼 순수한 공간이 아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그곳은 온갖 생물들의 배설물로 얼룩져 있다. 소의 배설물에는 쇠똥구리가, 말의 배설물에는 말똥구리가 온몸에 배설물을 묻히고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한다. 그것은 한가로운 공간이 아니라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노동의 공간이다.


순수한 물은 생체 기관에 독성이 강한 독처럼 작용한다. 생체 기관에 흡수되면, 혈액과 체액 속에 들어있는 모든 광물성 염분은 그 물 쪽으로 몰려든다. 왜냐하면 순수한 물은 광물성 염분이 더욱 더 잘 용해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의 핏속에 응축되어 있는 요소나 요산, 또는 다른 독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 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당뇨병 환자의 신장은 그 독소들을 여과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중에서


생각해보자. 순수란 무엇인가. 하나만 있다는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순수는 더불어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이 순수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려라

이 책의 다른 장점은 넒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병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시각을 보인다. 병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준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김종길의 시 「성탄제」에는 사경을 넘나드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해열제인 산수유 열매를 찾아 한밤중에 눈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깊은 밤 아버지는 어둠 속의 눈길을 헤치고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오신다. 아들은 아버지가 따온 산수유 열매를 먹고 점자 열이 내려간다. 간을 졸이시던 할머니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피로하신 아버지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돈다.

병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묶어 준다. … 그러나 조그만 증상에도 당장 병원에 가 항생제나 해열제 주사라도 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오늘날의 아이들이 제대로 아플 틈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
아픔을 통해서 아이들은 세상을 보는 더 맑은 눈을 갖게 된다. 그것이 어디 아이들뿐이겠는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도 있듯이, 같은 병을 앓아 봐야 그 병에 걸린 사람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동정하게 되는 법이다.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중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세계는 은근히 신비롭다. 2001년 미국의 「생태학지」에 연어와 강가의 나무가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산다는 기사가 실렸단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로버트 나이만 교수팀의 연구 결과인데, 알래스카에 있는 여러 강가의 나무를 조사한 결과 연어가 올라오는 강가의 나무가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무려 3배나 빨리 자랐던 것. 수령이 80~90년인 가문비나무는 굵기가 보통 30cm 정도인데 연어가 많이 올라오는 강가에서 자란 86년 수령의 가문비나무는 그 굵기가 50cm를 넘었던 것이다. 연구 결과, 나이만 교수팀은 이곳의 나무들이 특히 성장이 빨랐던 까닭을 태평양을 거슬러 올라온 연어의 사체에 있는 질소와 인을 충분히 섭취했기 때문이라고 것으로 결론지었다.

태평양 연어의 행동을 연구한 토머스 퀸은 연어들이 강을 통해 질소와 인을 육지로 운반해올 때 곰이 큰 몫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곰들은 습성 상, 연어를 잡으면 다른 곰들을 따돌리기 위해 연어를 먹기 전에 냇가의 둑이나 냇가의 숲으로 가지고 간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연어의 영양소가 풍부한 부분만 먹는다는 것이다.
2만 마리 이상의 연어 사체를 분석해 본 결과 곰은 연어 한 마리의 약 25% 정도만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곰의 이러한 먹는 습성은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곰이 먹다 남긴 연어의 사체는 새들과 포유류들이 먹어치운다. 그러고도 남은 부패한 찌꺼기에서는 질소와 인이 발생하고, 나무들은 이 질소와 인을 섭취하며 무럭무럭 성장한다. 나무는 강을 깨끗하게 하고 강가에 그늘을 만들어 연어에게 알 낳은 장소를 제공하고, 강에 떨어진 큰 나무 조각들은 어린 연어의 피신처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무들이 연어에게 고맙다는 듯이 보답을 하는 것이다.  
연어는 나무에게 바다의 보물인 질소와 인을 전해 주고, 나무는 연어에게 보금자리와 은신처를 제공한다.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연어와 나무는 공생을 실천하는 것이다.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중에서



저자의 말대로라면 지구는, 생태계는 ‘거대한 공생의 체계’이며 ‘거대한 그물망’이다. 그물코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그물망. 그리고 그물코는 혼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그물코는 다른 그물코에 의존해 있다. 만약 하나의 그물코가 풀리면 다른 그물코도 온전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낮지만 깊은 울림을 낳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심지어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 모든 존재, 더 확대해 우주의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준다고.

* 글: 오윤정 님(출판기획자, 환경교육센터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