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서평] 삶은 기적이다(Life is a Mi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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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적이다․ Life is a Miracle
웬델 베리 / 박경미 옮김/ 녹색평론사 2006


반성적 사고의 부재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했다. 음미되지 않는 삶이란 반성적 사고가 없는 삶, 자기검토가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이 말이, “생각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생각은 사물을 식별하는 인지작용이나, 문제를 푸는 계산능력과는 전혀 다른 정신적 기능이다. 생각 또는 사유는 “자신과의 대화”이며, “바람처럼 다가와 고착된 사고와 관습과 행위의 기준을 근본으로부터 흔들고 다시금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유는 모든 ‘독단’에 큰 위협이 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사유는 물려 내려온 권위와 관습의 힘을 근원적으로 반성하게 하며, 그 속에서 유지할 가치가 있는 것을 가려내고 무가치한 것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사유하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사유에는 삶이 동반된다” “삶 가운데 발생하는 일들의 의미는 생각 속에서 언어로 제공”되며, “정의와 행복과 미덕은 사유를 근거로 수립”된다(김선욱, 2005).
현대는 반성적 사유가 부재한 시대이다. 천성산터널, 새만금간척 등 환경사안들뿐 아니라 일일이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안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웬델 베리의 이 책은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촉구한다.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물음의 부재


웬델 베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녹색평론 창간호에 실린 ‘나는 왜 컴퓨터를 안 살 것인가’라는 글을 접하면서였다. (컴퓨터에 중독되다시피 한 현대인에게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이 글을 읽으며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모니터가 아니면 글이라는 것을 도통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종 인터넷 연결이 안되면 답답하고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상태다.)
베리의 글은 자신이 주장하듯이 ‘한 순간의 주저도 없이, 그리고 전혀 양해를 구할 마음 없이’ 직설적이고 냉철하다. 그의 글에 낯섬과 불편함을 느낀다면 우리가 현대문명의 혜택(희생을 기반으로 하는)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잊어 버렸다. 안락함과 즐거움에 대한 추구는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에 대해 눈을 감게 한다.


현대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 )는 미국 켄터키에서 태어났으며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문명비평가이자 농부이다. 젊은 시절 켄터키대학과 스탠포드대학에서 영문학과 문예창작을 배운 뒤 뉴욕대학과 켄터키대학에서 강의했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대학을 사직하고 5대에 걸쳐 조상들이 농사를 지어온 고향마을 헨리 카운티로 돌아와 지금까지 40년 동안 줄곧 전통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독립적인 소농이 중심이 된 공동체를 기반으로 ‘인간이 땅에 뿌리를 박고 책임 있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천착하는 시, 소설, 에세이 등 40여 권의 책을 냈고, T. S. 엘리어트상을 비롯한 문학상, 저술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 책『삶은 기적이다』는 저자가 밝혔듯이 에드워드 윌슨의 『통합(Consilience)』이라는 저서에 대한 비판적인 반론과 통찰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 ‘개발된’ 세계 모든 곳에서 인간 공동체와 그들의 자연적, 문화적 자원들을 파괴하고 있는 일종의 합법적인 야만주의라고 알려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과학의 권위와 응용 가능한 지식에 대한 특징을 윌슨의 통합에 대한 논의를 통해 파헤치고 있다.
단순한 책의 서평을 넘어서 부제에서 제시하듯이 “현대 미신에 대한 반박”의 내용이다. 현대의 미신이란, 현대 산업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인 지주인 과학과 기술에 대해 일반인들의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을 의미하며, 특히 윌슨이 주장하는 물질주의, 환원주의와 생물학을 기반으로 인문학, 종교, 예술 등의 “지식의 대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허황된 신기루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
베리는 냉철한 혜안을 통해 윌슨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의 글을 제시하며, 비판적인 시각과 성찰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있다.
과학과 자본의 공모, 그로부터 파생되는 폐쇄적인 전문가 시스템과 대학의 탈지성화, 그로 인한 인간성과 생태계의 파괴 등 그의 관심사는 과학에서 시작하여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235쪽).


에드워드 윌슨 『통합(Consilience)』


윌슨은 하버드대학의 생물학 교수이자 저명한 사회생물학자이며, 진화생물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와 있고, 저자의 명성에 맞는(어쩌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 대접을 받고 있다. 윌슨의 Consilience는 그의 제자이고, 현재 이화여대 생명과학전공 석좌교수로 있는 최재천 교수에 의해 “통섭”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2005년 국내 출판도서 중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통합(Consilience)』에서 드러난 윌슨의 생각을 살펴보자.
윌슨은 물질주의자다. 그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는 일들, 행위들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은 생물학적 법칙들에 의해 결정되며, 궁극적으로 물리적 법칙들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44쪽). (윌슨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주장만으로도 이 책의 억지스러움을 파악할 수 있다) 윌슨에게 있어 인간의 자유의지는 “생물학적 적응현상”이라고 하는 “환상”에 불과하다.
물질주의의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비’라는 개념도 윌슨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아내고야 말 것’이며, 아직 알려지지 않는 것을 다룰 과학의 미래는 신비다.
윌슨의 과학적 “신앙”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경험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신앙이다. 다시말해 “사실들과 사실에 근거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설명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마련하고”, 모든 학문분야를 “통합”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다(50쪽).
이 “통합”이라는 개념은 (웬델 베리가 지적하듯이) 명시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이고, 암시적으로는 전제주의적이다(51쪽).
윌슨에 따르면 “과학은…세계에 관한 지식을 모아서 입증가능한 법칙들과 원리들로 압축시키는 조직화되고 체계적인 작업이다.” 나아가서 그는 “과학의 최첨단은 환원주의, 즉 자연을 자연적 구성요소들로 쪼개는 것”이라고 말한다. 환원주의는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기계로” 정의하거나 동일시한다.
위에 열거된 윌슨의 주장에 대한 베리의 반박은 통쾌하며 동시에 유연하다.

윌슨은 대통합의 개념으로 “부합, 일치”를 뜻하는 consilience란 개념을 쓰는데, 이말은 “함께(con)" "뛰어오르다, 도약하다(salire)"에서 온 말이다(224쪽)
consilience라는 말은 서로 다른 것들이 보다 높은 자리로 비약하고 도약해서 부합하고 일치하는 것을 뜻한다. 즉 상향일치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실제로 윌슨이 하고 있는 것은 하향일치다. 윌슨은 물질보다 높고 큰 존재인 생명, 그 그보다 더 높고 큰 존재인 정신과 영을 보다 낮은 물질의 차원으로 환원시켜 물리적 법칙으로 해명(225쪽) 하려는 커다란 오류을 범하고 있다.


삶은 기적이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책을 읽으면서 거의 대부분의 페이지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베리가 인용한 많은 문구는 매우 적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개함은 물론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으로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심미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책의 처음에 인용된 “라이오넬 베스니를 기억하며”는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걸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다.“

첫 장의 리어왕에 대한 소개는 “삶은 기적이다”라는 책의 제목을 인상적으로 전하고 있다.
공동체를 위험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진정한 비판 없는 과학에서의 독창성과 혁신에 대해서는 에르빈 샤르가프의 말을 인용하여 비판하고 있다.

“모든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인류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될 무언가를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리게 만든다….”

예술이 결코 환원주의와 통합될 수 없음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한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윌슨은 『통합(Consilience)』에서 “궁극적으로 현실 전체를 에워쌀 마젤란적인 항해”를 기대하며, 이것은 우리와 “환경”을 생존의 목표선 너머로 데려갈 장기적인 목적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윌슨이 이전에 쓴 『생명사랑(Biophilia)』에서는 전혀 다른 결론은 내렸었다. “자연주의자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고, 그 모든 의도와 목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이 마젤란적인 항해에서는 한그루 나무 그루터기 옆을 서성이면서 전 생애를 보낼 수도 있다.”
후자의 내용을 긍정하며 베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무 한 그루라니? 삶은 기적이다. 그러므로 어느 곳이나 끝없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지성과 관심을 잘 감시하고 연마하여, 우리의 욕망과 자존심을 잘 다스리고, 조심성 있게 일하며, 믿음을 가진다면 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아마도 예술가들과 과학자들 둘 다에게서 그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206쪽).

 

 

* 글 : 민여경 님(환경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