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서평] "시튼동물기", 동물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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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도 감정과 권리가 있다 『시튼 동물기』


나는 내가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알았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흔히 구옥(舊屋)이라고 부르는 한옥 집에 살았으나 개 한 번 기르지 않았다. 아마 그건 봄을 맞아 날아든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라치면 기다란 장대 빗자루로 결투를 벌이곤 했던 어머니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터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듯한데 딱 한 번 “강아지 기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때 어머니는 단 한 마디로 내 욕구를 꺾어놓았다. 그 한마디란 “개털 날린다.”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파트에 살면서 개를 기른다는 사람을 보면 ‘그 많은 개털을 어찌할꼬?’하는 궁금증이 먼저 든다.
내게 동물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 동감 따위의 감정이 있음을 알게 한 것은 『시튼 동물기』였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전집을 사 주지 않았다. 내가 우연히(역시나 우연히!) 아주 일찍 내가 한글을 깨치는 바람에 읽을 수 있는 것은 일단 들쳐본다는 사실을 두 분 모두 알고 있었던 듯한데도 말이다. 그러다 일곱 살 때 동서문화사(어쩌면 동서출판사일 수도 있다.)의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 전집 중 일부를 갖게 되었다. 첫 출판 분인 30권이었는데 그 30권 가운데 『시튼 동물기』가 들어있었다.

숲에서 빚진 이가 숲에게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시튼 동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커럼포의 늑대 왕 로보’였다. 로보에 대한 애정과 감동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로보 이야기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늑대의 생태에 대단히 관심이 많아 늑대에 대한 자료를 발견하면 반드시 사서 모아둔다.
『시튼 동물기』에는 동물, 특히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갈등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다. 앞서 이야기한 늑대 로보만 해도 로보가 이끄는 늑대 무리가 양이나 소 같은 가축을 해치면서 주민들과 갈등이 증폭되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된다. 가축을 해치는 늑대라…. 목축업자에게는 생존이 달려 있으니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생동물은 인간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그런 짓을 했을까? 분명 그렇지 않다! 인간과 야생동물과의 갈등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숲의 주인이 변하면서 극대화되고 첨예해졌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숲의 주인은 숲을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인데 인간이 목축지를 늘리고자 산을 개간하면서 숲의 주인이라는 위치가 인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갈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대고 있는 식물이야 어찌해 볼 도리가 거의 없지만 동물은 달랐다. 야생동물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원래는 산 혹은 숲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의 영역인 곳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어린이용으로 번역된 『시튼 동물기』에는 거의 수록되어 있지 않다. 『시튼 동물기』 이면에 숨겨진 사연은『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성인용 동물기나, 시튼의 자서전인『야생의 순례자 시튼』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시튼 동물기』의 저자 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은 스스로를 ‘검은 늑대(black wolf)’라고 불렀다고 한다. 늑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인지 『시튼 동물기』에는 유난히 늑대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 시튼은 글 솜씨 못지않게 그림 솜씨가 뛰어나 삽화도 직접 그렸다. 그래서 시튼은 세계적인 동물학자이며 동물문학가이자 박물학자이며 화가라고 불린다.
시튼은 1870년 영국 사우스 실즈에서 스코틀랜드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시튼 일가가 고향을 떠난 것은 시튼이 여섯 살 때, 가세가 기울어 고향을 떠나 캐나나 토론토에 정착했으나 시튼 가(家)의 완고함은 그대로였던 듯하다. 시튼은 어린 시절을 상당히 고독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시튼에게 숨통이자 자신만의 세계가 바로 숲이었다. 시튼은 숲에서 자연과 동물에 대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시튼의 이런 체험은 자전적 소설 『작은 인디언의 숲』에 잘 드러나 있다. 시튼은 숲과 자연에 대한 감사를 『작은 인디언의 숲』의 서문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오래도록 간직할 수많은 기쁨들을 숲으로부터 빚진 이가 숲에게”

소리내지 않는 관찰자
이후 시튼은 토론토 대학교와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다. 자연을 사랑한 시튼은 박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화가가 되기를 원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영국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시튼은 파리의 살롱에 그림을 출품하는 등 화가로도 제법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자연과 동물에 대한 사랑을 접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시튼은 야생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로키산맥으로 들어갔다. 시튼이 야영 생활을 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이 총체가 바로『내가 아는 야생동물』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동물기’다. 이들 저작을 통해 시튼은 세계적인 동물학자 및 동물문학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숲에서는 소리내지 않는 관찰자가 가장 많은 것을 본다. 이것이 얀이 배운 중요한 교훈이었다. 관찰력의 가장 큰 어려움은 기다리는 일이었고, 그 해결책이 바로 그림 그리기였다. 책이 있다면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림 그리기만큼 좋지는 않았다. 책을 읽으면 숲이 아니라 책에 눈을 고정시켜야 하고, 책장 넘기는 소리에 겁 많은 숲의 동물들이 깜짝 놀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작은 인디언의 숲』, 두레

시튼은 1900년부터는 단순히 동물문학가에 머물지 않고 급진적인 환경보호주의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자연친화 단체 ‘우드크래프트 인디언 연맹’을 창설하고 베이든 파월과 함께 미국의 보이 스카웃을 창설했다. 또한 생태계 보존에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인디언 보호구역과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보호공원을 설치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1930년에는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시튼 빌리지’를 세웠다. 시튼 빌리지는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북미 인디언 문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중심지로, 미국 의회에서 조류 법안이 통과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46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동물연구와 인디언 문화 보존에 온힘을 바쳤다.
시튼이 인디언 문화에 심혈을 기울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튼은 대다수의 백인들이 야만인이라고 멸시한 인디언의 삶과 문화를 소중히 여겼다. 인간은 자연의 자녀이며 동물은 인간의 형제라고 생각했던 시튼은 건강한 육체, 풍부한 지혜, 용기, 덕망과 품위를 갖춘 인디언이야말로 이 세계의 이상이라고 믿었다. 이 같은 시튼은 믿음 뒤에는 숲 속 생활의 체험이 녹아있다. 시튼의 숲 속 야영생활과 야생동물에 대한 지식은 어린 시절 토론토의 숲에서 만난 인디언들에게 기대고 있다. 시튼은 인디언의 가르침이 삶에서도 유용한 가르침이었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길을 잃어버렸다면,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인디언들처럼 나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은 티피다, 라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언덕 위나 나무 위 다른 높은 곳에 올라가 야영장 부근의 눈에 띄는 장소를 찾는 것이다.
-『야생의 순례자 시튼』, 달팽이


소리내지 않고 다가와 속삭이는 진리
감시당하고 있을 때 간혹 느끼게 되는 그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다보니 약 12미터 떨어진 곳에 젊은 수사자가 있었다. 수사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난 후, 돌아서서 천천히 골짜기의 가장자리로 돌아갔다. 사자는 두 살 가량 되어보였고, 갈기가 어깨로부터 약간 덩어리져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나이의 사자는 호기심이 강한데, 분명 그 사자는 평생 동안 질리안과 나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자는 적어도 100미터는 따라온 후, 우리가 골짜기 가장자리에서 평원으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중에 루이스는 우리가 뛰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만약 뛰어 달아났다면 분명 우리를 추격해서, 마치 털실 공을 쫓는 새끼고양이처럼 재미로 사냥하고 싶어서 참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희망의 이유』, 궁리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인간뿐이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게다가 대단히 위험하기까지 하다. 두려울 때 으르렁대는 것이 동물만이 아니다. 사람도 두려울 때 으르렁대고 허새를 부리고 화를 낸다. 반대로 인간만 호기심 때문에 목숨을 내 놓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목숨을 잃고 일을 그르친다. 이것이『시튼 동물기』가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이고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랑받는 까닭이다. 소리내지 않고 다가와 속삭이는 나지막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 말이다.


*글 : 오윤정 님(출판기획자, 환경교육센터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