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서평]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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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봄, 침묵의 봄
레이철 카슨과 『침묵의 봄』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가루를 허옇게 뒤집어쓰던 시절이 있었다. ‘해충박멸’의 표어가 드높던 시절이었다. 하기는 머리며 몸에 이가 들끓긴 했다고 한다. 학교나 관공서에서는 주민들을 모아 놓고 DDT를 뿌려댔다. 어디 그뿐인가. 머릿니를 없앤다는 구실로 사내아이들의 머리는 죄다 박박 밀었고 여자아이들은 뒤통수가 드러나는 짧은 상고머리 일색이었다.


DDT라는 동전의 뒷면

DDT는 유기합성 살충제의 시초로 1874년 독일의 화학자 자이들러가 최초로 합성한 물질이다. 그러나 DDT가 독성이 있음을 발견한 이는 스위스의 화학자 뮐러다. 뮐러는 1939년 DDT가 파리, 모기, 이 등에 강력한 살충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고 그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받았다. DDT가 살충제로 사용되면서 병충해를 줄이고 식량생산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판단에 따른 수상이었다.
뮐러가 DDT라는 동전의 앞면이라면 레이첼 카슨은 동전의 뒷면이다. 카슨은 DDT를 포함한 화학물질이 각종 생물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폭로하고 그 위험성을 알린 사람이다. “생명을 지닌 모든 사물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이 있었다.”로 시작하는『침묵의 봄』은 책 전체를 매우고 있는 처절하고 암울한 증거와는 달리 생명의 봄을 열어젖혔다.


『침묵을 봄』을 쓴 레이철 루이스 카슨은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이다. 카슨은 1907년 펜실베이니아 스프링데일의 엘런제니 강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카슨의 고향 마을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에 제격이었다. 카슨의 회상에 따르면 카슨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양한 식물과 새, 곤충들의 이름을 일러주고 자연의 법칙을 일깨워줬다고 한다. 카슨의 어머니는 양식으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면 짐승이나 벌레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반드시 이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카슨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한 살 때 군대에 간 오빠가 보내 온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짧은 소설을 썼는데 이것이 『세인트 니컬러스 리그』 특별판에 실렸다. 그 때부터 카슨은 작가를 꿈꾸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펜실베이니아 여자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2학년에 올라가 수강한 생물학 강의가 카슨이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담당 교수 덕분에 생동감이 넘쳤던 생물학 수업은 카슨에게 고향의 숲과 야생동물을 떠올리게 했다.

카슨은 영문학과 생물학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득 두 학문을 결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카슨을 생물학을 선택했다.  


아름다운 그러나 두려운…


1957년, 카슨은 친구 올가 오언스 허킨스의 편지를 받았다. 보스턴에서 부부가 함께 조류 연구소를 운영하는 허킨스는 정부와 기업들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내용의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기고한 글이 신문에 실리자 허킨스는 기사를 오려 카슨에게 보냈다. 기사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1957년 여름 메사추세츠 주(州)정부가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늪지에 DDT를 살포했다. 살포된 DDT 가루는 바람을 타고 근처에 퍼졌다. 그런데 모기는 근절되지 않고 더 극성스러워졌다. 더 나쁜 일은 그 지역에 살던 전혀 해롭지 않은 조류와 곤충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주 정부를 찾아가 상의했지만 정부 관리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했다. 정부 관리들은 DDT가 매우 안전하며 사람에게도 무해하다며 DDT를 한 번 뿌려서는 모기를 완전히 없앨 수 없으므로 몇 번 더 뿌리겠다고 말했다.”

친구 허킨스의 편지를 받고 진상 조사에 착수한 카슨은 『침묵의 봄』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한 작업이라 완성하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책을 쓰는 사이 카슨은 온갖 질병에 시달렸고 급기야 유방암까지 걸렸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카슨은 서둘러 병상에서 일어나 집필에 집중했다.
“생명을 지닌 모든 사물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이 있었다. 봄이면 언덕 위 과수원에서 하얀 꽃들이 바람에 날렸다. 차갑고 맑은 여울마다 송어 떼가 알을 낳았고 숲에서는 여우 소리가 들려왔다. …(중략)…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불길한 그림자가 이 마을을 덮었다. 병아리 떼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렸고 소와 양들이 까닭 없이 죽어갔다. 나중에는 사람도 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었다. …(중략)… 자연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그처럼 즐겁게 재잘거리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쩌다가 보이는 새들은 한결같이 몸을 비틀며 푸드득거리다가 죽어갔다.”
『침묵의 봄』은 흡사 한 편의 서정시처럼 시작한다. 카슨의 정직하고 담백하며 유려한 글 솜씨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침묵의 봄』은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우선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학물질명(命)과 복잡한 수치는 읽는 이의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그러나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병들고 죽어가는 식물과 동물, 사람들 때문이다. 바퀴벌레를 없애려고 뿌린 엔드린 제제 살충제 때문에 한 살 난 아기와 강아지가 경련을 하다 죽었다, 다 쓰고 버린 농약 주머니를 가지고 놀던 세 명의 아이 중 두 명이 사망했다, 옥수수 밭에 뿌린 살충제 때문에 인근에 서식하던 새․토끼․너구리 등과 야생동물 및 곤충들이 몰살됐다는 등의 사례는 독자의 정서를 심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러니까 『침묵의 봄』은 아름답지만 두려운, 그래서 치명적인 책이다.

끝나지 않은 침묵 인류, 독성 물질 위에 눕다
지금이야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당시 『침묵의 봄』과 관련된 논쟁에서 가장 갈등이 심했던 부분은 살충제가 인간의 유전 체계와 건강에 위해하다는 주장이다. 카슨은 살충제가 암이나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판단,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 정부 관리들과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을 달랐다. 특히 화학물질 및 살충제 제조업자들의 반격은 대단히 거셌다. 그들은 카슨을 인간보다 동물, 벌레를 우위에 두는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고 치졸한 농담과 깨끗하지 못한 소문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봄』의 힘은 확대되어 갔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진화론이 인간의 역사를 변화시킨 것만큼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침묵의 봄』의 영향력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세계는 살충제의 위험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의회가 시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살충제를 사용하도록 묵인했다고 공식 사과했고 영국을 비롯한 몇 개의 국가는 미국의 뒤를 이어 화학물질 살충제 금지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침묵의 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화학 살충제 사용이 금지된 이후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서는 과거와 같은 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소위 제3세계, 가난한 나라에서 봄의 침묵은 이어지고 있다. 살충제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시장, 규제가 없는 시장을 찾아 이들 국가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이렇게 말한다.
“살충제를 뿌리는 과정은 끝없는 나선형처럼 이어지게 마련이다. 다윈이 제창한 적자생존론을 증명하듯, 곤충은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놀라운 종으로 진화해갔고 그러다 보니 이런 곤충에 사용하기 위한 더욱 독성 강한 살충제가 나오고 그 다음엔 이보다 독성이 더 강한 살충제가 등장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해충은 살충제 살포 후 생존 능력이 더욱 강해져서 이전보다 오히려 그 수가 많아지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이 화학전에서 결코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그저 격렬한 포화 속에 계속 휩싸일 뿐이다.”
『침묵의 봄』이 세상이 나온 지 4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인류는 카슨이 풍자한 화학전에 계속 패배해 왔다. 다시 말해, 인류는 지금도 독성 물질 위에 누워 있다.

참고도서 :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 『참 아름다운 도전1(명상)』

 

* 글: 오윤정 님(회원, 출판기획자)